한때 마을의 중심이자 주민들의 모임 장소였던 교회와 종교시설이 점점 문을 닫고 있다. 특히 농촌과 인구가 줄어드는 중소도시에서는 신도 수 감소, 운영비 부담, 건물 노후화로 인해 더 이상 종교 활동을 이어가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도시의 경우에도 이전 세대와 달리 종교 참여율이 낮아지면서, 역사적 가치가 있는 건물들이 방치되는 사례가 늘었다. 오늘은 버려진 종교시설이 재탄생한 이야기를 주제로 소개를 하려고 한다.
종교시설, 지역사회의 중심에서 사라진 이유
종교시설은 대개 웅장한 건축물과 독특한 내부 구조를 가지고 있다. 높은 천장,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 아치형 창문, 넓은 강당과 회의실 등은 단순히 철거하기 아까운 자산이다. 하지만 이를 유지·보수하며 종교 용도로만 쓰기에는 현실적 어려움이 크다.
이런 배경 속에서, 전 세계 여러 지역에서는 버려진 교회와 성당, 사찰 등의 건물을 새로운 커뮤니티 공간, 공연장, 도서관 등으로 재활용하는 움직임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종교적 의미는 사라졌지만, 건물의 아름다움과 공동체의 기억은 새로운 형태로 살아나는 것이다.
종교 건물의 두 번째 인생
커뮤니티 센터로 변신한 교회
영국 맨체스터의 한 오래된 성공회 교회는 신도가 줄어들어 문을 닫았지만, 지역 주민들의 힘으로 ‘더 코너스톤(The Cornerstone)’이라는 커뮤니티 센터로 재탄생했다. 이곳은 주민 회의, 취미 강좌, 청소년 모임, 복지 상담 등 다양한 활동의 중심지가 되었다. 고딕 양식 건축의 장점을 살린 인테리어와 카페가 있어, 종교적 의미 없이도 누구나 찾는 공간이 됐다.
한국에서도 전북 군산의 한 폐교회가 주민 커뮤니티 센터로 재탄생했다. 본당은 공연과 전시가 가능한 다목적 홀로, 교육관은 아이들의 방과 후 수업과 어르신 문화 프로그램 공간으로 변신했다.
공연장과 문화예술 공간
네덜란드 마스트리흐트에는 ‘도미니카넨 서점(Boekhandel Dominicanen)’이 있다. 13세기 도미니코 수도회를 위해 지어진 고딕 성당을 리모델링해 만든 서점 겸 공연 공간이다. 높은 천장과 스테인드글라스 창이 그대로 남아 있어, 책을 고르거나 음악 공연을 관람하는 경험이 매우 특별하다.
미국 뉴욕 브루클린의 ‘세인트 안의 교회’는 더 이상 종교 활동을 하지 않지만, 클래식 콘서트와 현대 무용 공연이 열리는 공연장으로 운영된다. 종교시설의 음향 구조와 넓은 홀은 음악과 연극에 이상적인 환경을 제공한다.
도서관과 학습 공간
캐나다 퀘벡주의 한 시골 마을에서는 문을 닫은 성당을 마을 도서관으로 바꿨다. 성당 특유의 웅장한 공간 덕분에 서가 사이에 여유로운 휴게 공간과 어린이 독서 구역, 지역 역사 자료실까지 갖출 수 있었다.
국내에서도 충청도의 한 작은 마을에서 폐교회를 도서관으로 바꾼 사례가 있다. 종교 활동이 끝난 후에도 주민들은 그곳에 모여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며, 건물은 여전히 마을의 중심 역할을 하고 있다.
버려진 종교시설 재활용의 의미와 가능성
종교시설의 재활용은 단순히 ‘빈 건물을 활용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우선, 역사적·문화적 가치를 보존할 수 있다. 종교 건축물은 보통 수십 년, 길게는 수백 년의 역사를 품고 있으며, 지역의 건축미와 장인 정신이 집약된 공간이다. 이를 철거하면 물리적 공간뿐 아니라 지역 정체성의 일부가 사라진다.
둘째, 지역 공동체 활성화에 기여한다. 커뮤니티 센터, 공연장, 도서관 등은 주민이 모일 수 있는 장을 제공하고, 다양한 문화·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다. 이는 인구 감소 지역에서 공동체 결속력을 높이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셋째, 관광 자원으로의 발전 가능성이 크다. 독특한 건축 양식과 역사적 배경은 관광객의 발걸음을 이끌고, 지역 경제에 긍정적 영향을 준다. 특히 해외에서는 ‘성당 카페’나 ‘교회 호텔’처럼 차별화된 콘텐츠로 성공한 사례가 많다.
마지막으로, 종교시설의 재활용은 지속가능한 도시재생과도 맞닿아 있다. 기존 건물을 철거하지 않고 재사용하면, 자재 낭비와 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다. 이는 환경적인 측면에서도 큰 의미가 있다.
과거와 현재를 잇는 다리
버려진 교회와 종교시설은 과거의 신앙과 지역 공동체의 기억이 깃든 장소다. 이 공간들이 단순히 폐허로 남지 않고, 새로운 쓰임과 이야기를 가진 장소로 다시 살아나는 일은 문화와 경제, 환경 모두에 긍정적인 변화를 준다.
커뮤니티 센터로서 주민을 연결하고, 공연장으로서 예술을 꽃피우며, 도서관으로서 지식을 나누는 종교시설의 재탄생은 “과거와 현재를 잇는 다리”다. 앞으로도 이런 사례가 더 늘어난다면, 우리는 더 많은 지역에서 역사와 사람, 그리고 미래가 공존하는 공간을 만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