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오래된 지하공간의 재탄생

by 강이의홈 2025. 8. 13.

지하공간은 대개 실용적인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전쟁 시 피난처로 쓰였던 방공호, 도심 교통망의 핵심인 지하철역, 물류와 저장을 위한 창고 등이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기능을 잃은 이 공간들은 문이 닫히고, 사람들의 발길이 끊긴 채 방치되곤 했다. 오늘은 오래된 지하공간을 새로운 모습으로 재탄생 시킨 사례에 대해 소개 하려고 한다.

오래된 지하공간의 재탄생
오래된 지하공간의 재탄생

 

 지하공간이 가진 잠재력

이들 지하공간은 햇빛이 닿지 않는 폐쇄적 구조 때문에 일반적으로 ‘활용이 어렵다’는 인식이 있었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외부 날씨와 무관한 환경, 독특한 음향과 분위기, 그리고 도시 속 숨겨진 장소라는 희소성이 강점이 될 수 있다.
2000년대 이후 세계 여러 도시에서 이런 ‘숨겨진 지하공간’을 문화·상업 공간으로 탈바꿈시키는 프로젝트가 활발해졌다. 오래된 방공호를 박물관과 공연장으로, 사용하지 않는 지하철 구역을 예술 전시관과 카페로 만드는 것이다. 이는 새로운 관광 자원 창출과 지역 경제 활성화, 그리고 역사 보존의 세 마리 토끼를 잡는 방법으로 주목받고 있다.

지하에서 피어난 문화와 상업

서울 지하철 유휴구역의 문화공간화
서울시에서는 지하철 역사 내 유휴공간을 활용해 갤러리, 북카페, 팝업 스토어를 운영하고 있다. 예를 들어, 4호선 혜화역의 ‘아트스테이션’은 작은 전시관으로 꾸며져 출퇴근길 시민이 자연스럽게 예술 작품을 접할 수 있다. 2호선 을지로입구역 주변도 폐쇄된 연결통로를 개조해 팝업 상점과 전시회가 열리는 공간으로 변신했다.
인천의 지하 방공호 전시관
인천 중구에는 한국전쟁 당시 사용된 방공호가 남아 있다. 이곳은 2010년대 들어 리모델링되어 전시관과 역사 체험장으로 운영되고 있다. 원래의 콘크리트 구조와 좁은 통로를 그대로 살려 당시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으며, 전시 콘텐츠를 통해 전쟁의 역사와 평화의 중요성을 알린다.
부산의 지하 벙커 아트센터
부산 영도구의 한 폐쇄된 군사 방공호는 ‘벙커 아트센터’라는 복합문화공간으로 재탄생했다. 낮은 천장과 굽이진 통로, 습기 어린 벽면이 오히려 전시 분위기를 독특하게 만들었다. 이곳에서는 설치미술, 미디어아트, 공연이 열리며, 일반 갤러리에서는 느낄 수 없는 몰입감을 제공한다.

지하의 어둠을 빛으로 바꾼 혁신

영국 런던의 ‘더 클링크(The Clink)’와 ‘더 포스트 오피스 철로’
런던에는 과거 범죄자들을 수감하던 지하 감옥과, 우편물 수송을 위해 만든 ‘포스트 오피스 지하 철로’가 있다. 이들은 현재 관광지로 재탄생했다. 감옥은 역사 체험과 전시를 제공하며, 지하 철로는 관광객이 실제 열차를 타고 도심 지하를 둘러볼 수 있는 어트랙션으로 운영된다.
일본 도쿄의 ‘지하 신주쿠 예술공간’
도쿄 신주쿠에는 사용하지 않는 지하 보행로 일부를 개조해, 실험적인 미디어아트와 퍼포먼스 전시를 여는 ‘지하 예술공간’이 있다. 도심 속 숨겨진 통로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한정된 전시라는 점이 젊은 층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프랑스 파리의 ‘카타콤(Paris Catacombs)’
원래 석회석 채석장이었던 파리 지하 카타콤은 18세기 후반부터 묘지로 사용되었다. 현재는 역사·문화 관광지로 개방되어, 전 세계에서 온 방문객들이 지하의 긴 복도와 해골 진열을 탐험한다. 파리는 이 공간을 단순한 호기심의 대상으로만 두지 않고, 역사 교육과 문화 콘텐츠로 확장했다.


오래된 지하 방공호나 지하철 유휴구역은 과거에는 불필요한 공간, 심지어는 ‘무서운 장소’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기획과 디자인, 콘텐츠가 결합되면, 이곳은 도시 속 숨겨진 보물창고가 된다. 지상에서는 불가능한 독특한 체험, 안정적인 실내 환경, 그리고 역사성을 갖춘 공간이기 때문이다.
성공적인 지하공간 재생의 핵심은 세 가지다.
원형 보존과 안전성 확보하여 과거의 구조와 분위기를 살리되, 안전 시설과 현대적 편의성을 갖춘다.
차별화된 콘텐츠 기획으로 일반 공간에서는 할 수 없는 전시, 공연, 체험 프로그램을 만든다.
지역과의 연계성을 고려하여 지상과 연결되는 상권·관광 루트를 설계해 지속 가능한 운영을 가능하게 한다.
지하의 어둠 속에서 빛을 찾는 일은 단순한 리모델링이 아니라, 과거를 품은 공간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 과정이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역사와 예술, 그리고 도시의 또 다른 얼굴을 만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