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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튬·희토류 자원의 지정학적 중요성

by 강이의홈 2025. 9. 19.

21세기 국제 질서를 규정하는 핵심 키워드 중 하나는 ‘에너지 전환’이다. 화석연료 중심의 에너지 체계에서 벗어나 탄소중립 사회로 나아가려는 움직임이 세계 곳곳에서 가속화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자원이 바로 리튬과 희토류다. 리튬은 전기차 배터리, 에너지 저장 장치(ESS), 스마트 디바이스 등 다양한 전자 기기의 핵심 소재로 사용된다. 전기차 산업의 급성장과 더불어 리튬 수요는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으며, 이 때문에 ‘화이트 오일(White Oil)’이라는 별칭까지 붙었다. 희토류는 네오디뮴, 디스프로슘, 란타넘 등 총 17종의 원소군을 뜻하는데, 이들은 고성능 자석, 통신 장비, 레이저, 방위 산업, 반도체 제조 등 첨단 기술 전반에 걸쳐 쓰인다.

리튬·희토류 자원의 지정학적 중요성
리튬·희토류 자원의 지정학적 중요성

에너지 전환 시대의 새로운 전략 자원

이러한 자원은 단순한 산업 소재를 넘어 전략적 의미를 갖는다. 과거 석유가 세계 질서를 좌우했다면, 지금은 리튬과 희토류가 비슷한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리튬과 희토류는 매장량과 생산, 정제 능력이 특정 국가에 편중되어 있어 지정학적 가치가 더욱 부각된다. 예를 들어, 세계 리튬 매장량의 상당 부분이 칠레·볼리비아·아르헨티나 등 남미 ‘리튬 삼각지대’에 집중되어 있고, 희토류의 경우 중국이 전 세계 공급망을 사실상 주도하고 있다. 이 때문에 자원 보유국과 수요국 사이에서 새로운 힘의 균형이 형성되며, 리튬과 희토류는 국가 간 협상력과 외교 전략을 좌우하는 중요한 변수로 부상하고 있다. 결국, 이 두 자원은 단순한 ‘채굴 대상’이 아니라 에너지 전환과 산업 경쟁력, 나아가 국가 안보를 좌우하는 전략 자원으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자원 편중성과 공급망 리스크의 정치적 파급력

리튬과 희토류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공급망의 취약성이다. 매장 지역이 특정 국가에 집중되어 있고, 가공과 정제 기술 또한 몇몇 국가가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리튬은 주로 남미와 호주에서 생산되며, 중국은 채굴보다 정제 및 가공에서 압도적 우위를 점하고 있다. 희토류는 특히 중국의 의존도가 높다. 중국은 세계 희토류 생산량의 60%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정제 능력은 그보다 더 큰 비중을 장악하고 있다. 이는 곧 특정 국가가 의도적으로 자원 공급을 제한하거나 무기화할 경우, 글로벌 산업 전반이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 있음을 의미한다.

실제로 중국은 과거 일본과의 영토 갈등 과정에서 희토류 수출을 제한한 전례가 있다. 이 사건은 국제사회에 충격을 주었고, 자원의 무기화 가능성을 현실로 각인시켰다. 이후 미국, 일본, 유럽연합 등은 공급망 다변화에 나섰다. 미국은 호주, 캐나다 등 자원국과 협력을 강화하고 있으며, 유럽연합은 ‘전략적 원자재법(Critical Raw Materials Act)’을 통해 희토류를 포함한 핵심 자원의 안정적 확보를 제도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한국과 일본도 마찬가지로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국가들과 장기 협력 관계를 확대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자원 민족주의(Resource Nationalism)’를 자극하기도 한다. 자원을 보유한 국가는 자국 내 가공 산업을 육성하고 외국 자본 참여를 제한함으로써, 자원의 부가가치를 자국 경제에 환원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볼리비아는 리튬 개발에 외국 기업의 투자를 허용하되 국가 지분 참여를 의무화했고, 아프리카 일부 국가는 희토류 원광 수출을 제한하고 현지 가공을 요구하고 있다. 이는 공급망 안정성을 추구하는 수요국과 자원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공급국 간의 긴장 관계를 심화시킨다. 따라서 리튬과 희토류의 지정학적 중요성은 단순히 ‘수요 증가’에 그치지 않고, 국제 정치와 외교 전략 전반을 뒤흔드는 공급망 리스크의 핵심 요인으로 기능하고 있다.

미래 경쟁 구도와 자원 외교의 방향

앞으로 수십 년간 리튬과 희토류를 둘러싼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2040년까지 전 세계 리튬 수요는 현재의 40배, 희토류 수요는 약 7배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전기차, 재생에너지, 반도체, 방위 산업 등 전략 산업의 성장이 곧 리튬과 희토류 확보 여부에 달려 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각국은 이 자원을 ‘경제 안보’ 차원에서 관리하고, 장기적인 자원 외교 전략을 펼칠 수밖에 없다.

앞으로의 자원 경쟁 구도는 크게 세 가지 방향으로 전개될 것이다. 첫째는 공급망 다변화이다. 미국과 유럽, 일본, 한국 등은 이미 다양한 자원국과 협력하며 특정 국가 의존도를 줄이려 하고 있다. 둘째는 재활용과 대체 기술 개발이다. 사용 후 배터리에서 리튬과 희토류를 회수하거나, 희토류를 덜 쓰는 신소재를 개발하는 움직임이 활발히 진행 중이다. 셋째는 자원 외교다. 과거 석유 시대에는 산유국 중심의 에너지 외교가 국제 정치의 핵심이었다면, 앞으로는 리튬과 희토류를 둘러싼 협력과 갈등이 국제 정치의 주요 변수가 될 것이다.

궁극적으로 리튬과 희토류는 단순히 ‘산업 재료’가 아니라, 기후위기 대응과 산업 경쟁력, 국가 안보를 동시에 좌우하는 전략 자산이다. 자원 보유국은 이를 통해 외교적 영향력을 확대할 것이고, 수요국은 안정적 공급을 위해 장기 파트너십과 국제 협력 체제를 구축하려 할 것이다. 따라서 리튬과 희토류의 지정학적 중요성은 향후 국제 질서를 규정하는 핵심 변수로 작용할 것이며, 이 자원을 둘러싼 경쟁과 협력이 어떻게 전개되느냐에 따라 세계 경제와 정치의 흐름이 크게 달라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