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들어 에너지 전환은 단순히 환경적 선택을 넘어 국가 경제와 국제 질서를 재편하는 핵심 동력이 되고 있다. 화석연료 중심의 시대가 저물고, 태양광·풍력·수소·배터리 등 청정에너지 산업이 새로운 성장 축으로 부상하면서 ‘글로벌 남반구(Global South)’라 불리는 개발도상국과 신흥국들에게 예상치 못한 기회가 열리고 있다.
글로벌 에너지 지형 변화와 남반구 국가들의 새로운 역할
과거 에너지 패권은 석유와 천연가스 매장량에 의해 좌우되었다. 중동 산유국들이 국제 정치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재생에너지 시대에는 태양, 바람, 지리적 조건, 희토류와 같은 신자원 확보 능력이 더욱 중요해졌다. 이는 오히려 글로벌 남반구가 가진 자연적·지리적 자원과 맞닿아 있다.
아프리카 사헬 지대는 연중 대부분이 강한 태양광을 확보할 수 있고, 케냐·에티오피아·남아프리카공화국은 풍력 잠재력이 크다. 남미의 칠레 아타카마 사막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일사량을 기록하는 지역 중 하나로, 대규모 태양광 발전 단지 건설에 적합하다. 브라질은 이미 수력 발전 대국이지만, 최근에는 태양광·풍력 프로젝트에서도 급성장하고 있다. 인도와 동남아시아 국가들 역시 인구 증가와 도시화로 급격한 전력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재생에너지 확대를 전략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글로벌 남반구가 주목받는 또 다른 이유는 ‘에너지 접근성 문제’다. 여전히 남반구에는 전기조차 공급되지 않는 지역이 많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지역의 수억 명은 전력망에 연결되지 못하고 있으며, 이는 경제 발전과 삶의 질 개선의 가장 큰 걸림돌이다. 하지만 태양광과 소규모 풍력 시스템은 대규모 중앙집중식 전력망을 깔지 않아도, 오프그리드 방식으로 전력을 공급할 수 있게 한다. 즉, 기존 인프라를 보완하는 차원을 넘어, 전혀 새로운 발전 방식을 통해 전력 소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이는 글로벌 남반구가 에너지 전환 과정에서 단순히 ‘환경 규제에 따른 부담자’가 아니라, 새로운 혁신 모델을 제시할 수 있는 주체임을 의미한다.
또한, 기후 위기 대응의 최전선에 서 있는 것도 남반구 국가들이다. 홍수, 폭염, 가뭄, 태풍 등 자연재해의 피해는 선진국보다 신흥국과 개발도상국에 훨씬 더 치명적이다. 따라서 이들 국가가 재생에너지 전환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은 국제 기후 협약을 따르는 차원을 넘어, 국가 생존 전략이기도 하다. 결국 글로벌 남반구는 기존의 ‘피해자’ 이미지를 넘어, 기후 위기를 돌파할 해법을 제시하는 새로운 에너지 리더로 부상할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국제 금융과 기술 이전이 열어주는 성장의 창
에너지 전환 과정에서 글로벌 남반구가 직면하는 가장 큰 문제는 재원과 기술 부족이다. 태양광 패널, 풍력 터빈, 대규모 배터리 저장 장치, 스마트 그리드 시스템 등은 상당한 초기 투자 비용과 첨단 기술이 필요하다. 그러나 국제 사회는 이러한 장벽을 허물기 위한 다양한 협력 구조를 마련하고 있다.
먼저 금융 측면을 살펴보면, 세계은행(WB), 아시아개발은행(ADB), 아프리카개발은행(AFDB) 등 국제 금융 기관들은 재생에너지 프로젝트에 대규모 융자와 보조금을 지원하고 있다. 최근에는 ‘녹색기후기금(GCF)’과 같은 국제 기후 재원도 본격적으로 남반구 국가들에 투입되고 있다. 특히 저리 대출이나 보증 형태로 제공되는 자금은 민간 기업이 참여할 수 있는 문턱을 낮춰, 공공·민간 합작 투자(PPP) 모델을 확산시키고 있다. 이로써 재정이 열악한 개발도상국들도 재생에너지 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고 있다.
기술 측면에서도 중요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과거에는 태양광과 풍력 기술을 미국, 독일, 일본 등 일부 선진국 기업들이 독점했다. 그러나 지금은 중국이 태양광 모듈과 배터리 분야에서 세계 시장을 주도하고 있으며, 인도, 브라질, 베트남 등 신흥국 기업들도 빠르게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 이는 글로벌 남반구 국가들 간의 남남 협력(South-South Cooperation) 가능성을 높여주고 있다. 예를 들어, 중국 기업이 아프리카에서 태양광 발전소를 건설하고, 인도 기업이 동남아에서 풍력 프로젝트를 주도하는 사례가 점점 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국제 기후 협약과 무역 규제도 남반구 국가들에게 기회로 작용한다. 유럽연합(EU)이 도입하려는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는 고탄소 제품에 관세를 부과하는 제도인데, 이는 화석연료 중심의 제조업을 운영하는 국가들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반대로 재생에너지 기반의 제조업 체제를 구축하는 신흥국은 국제 시장에서 새로운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즉, 기술 이전과 국제 금융 지원을 활용한 남반구의 재생에너지 투자는 단순히 전력 생산을 넘어, 글로벌 무역 경쟁 구도 속에서 새로운 산업 전략으로 확장될 수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국제적인 탄소 배출권 거래제도 역시 남반구 국가들에게 수익 창출의 기회를 제공한다. 풍력 단지나 대규모 태양광 발전소를 통해 감축된 탄소 배출량을 국제 시장에 판매함으로써 외화 수익을 얻을 수 있다. 이는 다시 재생에너지 투자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다. 결국 국제 금융과 기술 이전은 글로벌 남반구가 에너지 전환을 경제 성장과 산업 경쟁력 강화로 연결하는 중요한 발판이 되고 있다.
에너지 전환이 가져올 사회·경제적 변화와 남반구의 미래
글로벌 남반구의 에너지 전환은 단순히 전력 구조를 바꾸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곧 사회적·경제적 변화를 수반하는 거대한 구조 전환이다. 우선 고용 측면에서 재생에너지 산업은 대규모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 태양광 패널 설치, 풍력 터빈 유지·보수, 배터리 제조, 스마트 전력망 운영 등 다양한 분야에서 새로운 일자리가 필요하다. 국제재생에너지기구(IRENA)는 2050년까지 재생에너지 분야에서 전 세계적으로 4,200만 개 이상의 일자리가 생길 것으로 전망하고 있으며, 그 상당 부분이 신흥국과 개발도상국에서 발생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는 청년층 인구 비중이 높은 남반구 국가들에서 실업 문제 해결의 중요한 대안이 될 수 있다.
사회적 측면에서도 변화가 예상된다. 전력 공급이 원활해지면 교육, 의료, 정보 접근성이 크게 향상된다. 예컨대 전기가 부족한 아프리카 농촌에 태양광 발전소가 들어서면, 야간에도 학교 수업이 가능해지고, 병원은 전자 의료 장비를 안정적으로 가동할 수 있으며, 주민들은 휴대전화와 인터넷을 통해 더 넓은 시장과 연결될 수 있다. 이는 단순한 생활 편의 향상을 넘어 사회적 포용성 강화와 빈곤 감소로 이어진다.
또한 에너지 전환은 정치적·외교적 지형을 재편할 가능성도 크다. 전통적으로 석유와 가스 자원에 의존해왔던 국제 질서에서 벗어나, 태양과 바람이라는 보편적 자원을 기반으로 하는 재생에너지 시대에는 특정 국가가 독점적으로 패권을 쥐기 어렵다. 대신 누가 더 빨리 기술을 발전시키고, 누가 더 효율적으로 자원을 활용하느냐가 중요해진다. 이는 남반구 국가들이 ‘자원 수탈의 대상’에서 ‘에너지 전환의 주도 세력’으로 올라설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한다.
물론 과제도 존재한다. 불안정한 정치 상황, 부패, 제도적 미비, 인프라 부족 등은 여전히 남반구의 재생에너지 확대에 장애물로 작용한다. 하지만 국제 사회의 지원과 자국 내부 개혁이 병행된다면, 에너지 전환은 단순한 환경 정책이 아니라 경제 성장, 사회 발전, 국제적 위상 제고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역사적 기회가 될 것이다.
따라서 에너지 전환은 글로벌 남반구가 단순히 ‘기후 위기 피해자’로 남을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성장 동력과 국제 질서 재편의 주체가 될 것인지를 가르는 중요한 분수령이 되고 있다. 에너지 전환의 흐름 속에서 남반구가 잡을 수 있는 기회는, 어쩌면 산업혁명 이후 가장 큰 전환점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