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지 않고 남은 건물들은 ‘없어져야 할 존재’가 아니라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가’를 물어야 할 대상이다. 그 빈자리는 과거의 흔적을 간직하면서 동시에 현재 사회의 결핍을 드러내고, 또 미래의 가능성을 품고 있다. 오늘은 그 건물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다룰지에 대해 의견을 내보려고 한다.
사라지지 않은 건물의 존재감: 남겨짐의 이유
도시와 마을을 걷다 보면 이미 제 기능을 잃었음에도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건물들을 발견할 수 있다. 문이 굳게 잠긴 채 먼지를 뒤집어쓴 상가, 간판이 바래진 오래된 극장, 철문만 덩그러니 닫힌 공장 같은 건물들은 한 시대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이들은 무너뜨려 새로운 건물을 세우는 대신, 여러 이유로 자리를 지켜온 공간들이다.
그 이유는 다양하다. 경제적 요인이 가장 크다. 건물을 철거하고 새로 짓기에는 막대한 비용이 소요되기 때문에, 주인조차 방치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법적·행정적 문제도 적지 않다. 건물 소유자가 다수일 경우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아 철거가 지연되거나, 문화재적 가치가 있다는 이유로 보존 판정을 받아 그대로 남는 경우도 있다. 더 나아가 어떤 건물들은 의도적으로 보존되기도 한다. 도시의 역사와 정체성을 보여주는 상징적 공간으로, 후세에 남겨야 할 유산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결국 사라지지 않은 건물들은 ‘존재 자체로 남겨진 이유’를 품고 있다. 그들이 단순히 방치되었든, 혹은 의도적으로 보존되었든, 그 빈자리는 우리 사회가 건축과 공간에 어떤 가치를 부여하고 있는지를 드러낸다.
남은 건물이 드러내는 빈자리의 의미
사라지지 않고 남은 건물은 겉보기에는 ‘버려진 흔적’일 수 있지만, 실상은 도시와 사회의 집단 기억을 담고 있는 빈자리의 상징이다. 그 빈자리가 지닌 의미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시간의 기록자로서의 의미다. 오래된 건물은 시대의 변화와 역사를 몸으로 겪어낸 증거물이다. 예를 들어, 한때 마을의 중심지였던 극장은 지금은 문이 닫혀 있지만, 그 건물 앞에서 사람들은 과거의 활기와 웃음을 떠올릴 수 있다. 즉, 건물은 단순한 벽돌과 철근의 덩어리가 아니라, 세대와 시대를 이어주는 ‘기억의 매개체’ 역할을 한다.
둘째, 사회적 결핍을 드러내는 빈자리다. 사용되지 않는 건물은 도시의 균열과 공동체의 단절을 보여준다. 버려진 학교는 학생 수 감소와 교육 환경의 변화를, 닫힌 공장은 일자리와 지역 경제의 붕괴를 상징한다. 그 건물이 여전히 자리에 있다는 사실은 우리가 해결하지 못한 사회적 문제를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셋째, 상상력의 공간으로서의 의미다. 남아 있는 빈 건물은 단순히 쓸모없음이 아니라, 새로운 가능성의 캔버스가 되기도 한다. 사람들은 빈 건물을 보며 ‘여기에 무엇이 들어서면 좋을까?’, ‘이 공간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를 떠올린다. 이처럼 사라지지 않은 건물의 빈자리는 도시의 미래를 구상하는 상상력을 자극하는 특별한 장치다.
빈자리를 새롭게 읽는 법: 재생과 공존의 길
사라지지 않고 남은 건물들은 단순히 과거의 흔적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를 연결할 수 있는 잠재적 자산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 빈자리를 어떻게 해석하고 활용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이어가야 한다.
첫 번째 길은 도시재생의 자원으로 삼는 것이다. 실제로 세계 여러 도시들은 버려진 건물을 철거하는 대신 새로운 기능을 부여하여 다시 살아나게 하고 있다. 독일 에센의 탄광 지역은 버려진 산업 시설을 문화예술 단지로 탈바꿈시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고, 일본의 작은 마을에서는 폐교를 숙박 시설이나 체험 공간으로 재활용해 지역 경제를 살리고 있다. 한국에서도 서울의 문화비축기지, 문래동 철공소 일대 등이 좋은 사례다.
두 번째 길은 공동체의 회복 공간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남아 있는 건물을 청년 창업자들의 작업실, 주민들이 모이는 커뮤니티 센터, 혹은 공유 공간으로 활용하면 사람들 사이의 관계망이 다시 살아난다. 버려진 공간을 단순히 경제적 이익을 위한 부동산 자원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지역 사회를 재구성하는 매개체로 본다면 그 가치는 훨씬 커진다.
세 번째 길은 자연과의 공존을 도모하는 것이다. 모든 건물을 굳이 새로 활용할 필요는 없다. 어떤 건물들은 철거하지 않고 그대로 두어, 자연이 스스로 그 자리를 회복하도록 하는 것도 의미 있는 선택이다. 담벼락을 타고 자라는 담쟁이, 건물 틈새에서 피어나는 작은 나무들은 ‘시간이 만든 풍경’으로서 도시 속 새로운 생태 공간을 만들어낸다. 이는 기후 위기 시대에 더욱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결국 사라지지 않고 남은 건물들은 우리에게 선택을 요구한다. 그것을 단순한 흉물로 남길 것인지, 아니면 도시와 사회를 재구성하는 가능성으로 바꿀 것인지는 우리의 몫이다.